2023년 개봉한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한국 최초의 하이재킹 소재 실화 스릴러로,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사건을 바탕으로 극한의 긴장과 인간 군상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감독 김성훈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극도의 공포와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속에, 인간의 선택과 희생, 생존 본능과 정의 사이의 갈등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특히 1970년대의 정치적 긴장감, 냉전의 공기,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정교하게 복원하며, 관객은 단순한 테러물이 아닌, 역사적 맥락과 인물 중심의 스토리를 통해 극한의 몰입을 경험한다.
1. 줄거리 – 하늘 위에서 벌어진 남북의 심리전
1971년 겨울, 서울에서 출발해 강릉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 여객기. 비행 중 갑자기 한 승객이 무장한 채 조종실을 점거하며 항로를 변경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다름 아닌 북한 공작원. 비행기는 강제로 북쪽으로 향하고,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51명은 일생일대의 공포에 빠진다.
기장은 생존을 택할 것인가, 저항을 선택할 것인가. 승무원들은 탑승객을 보호하면서도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갈등에 휩싸인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탄 이 항공기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며,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반응은 심리적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편 지상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정부는 납북 여부를 두고 혼란에 빠진다. 비행기는 결국 북한으로 향하고, 승객들은 강제로 북한 당국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정치적 대립의 상징이 된다.
2. 캐릭터와 연기 – 상처받은 시대의 얼굴들
● 기장 박재혁 (하정우)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서도 무게감 있는 연기와 인간적인 캐릭터 해석을 통해 극의 중심을 잡는다. 박재혁 기장은 상공이라는 물리적으로 폐쇄된 공간에서, 탑승객의 생명과 자신의 소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는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보통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정우는 말보다 눈빛, 표정, 몸짓으로 내면의 고뇌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한다.
● 승무원 오수진 (전도연)
전도연은 직업적 사명감과 인간적인 공포, 그리고 저항의 의지를 동시에 표현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기존의 '희생적인 여성'이라는 도식적인 틀을 벗어나,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고 기장과 함께 상황을 풀어나가는 능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전도연의 연기는 감정의 과잉 없이도 상황의 긴박함과 인물의 절실함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 북한 공작원 강철우 (임시완)
임시완은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무자비하고 냉철한 대립자를 연기한다. 그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이념에 세뇌된 인물로서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공포와 연민이 교차되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임시완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차가운 눈빛은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3. 연출과 완성도 – 단단하게 조여 오는 서사의 힘
《하이재킹》은 하늘 위의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도 극도의 서스펜스를 창출한다. 감독 김성훈은 《터널》에서 보여준 공간의 한계를 서사적 강점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비행기의 좁은 통로, 조종실의 밀폐된 구조, 긴박한 교신 상황 등은 관객을 마치 비행기 안에 갇힌 것 같은 체험으로 이끈다. 카메라는 흔들리는 기체와 함께 주인공의 눈동자를 따라가며, 공포와 결단, 분노와 체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재현한 미술, 조명, 소품 등은 1970년대의 공기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복원하며 단순한 재난극이 아닌 ‘역사적 스릴러’로서의 품격을 높인다.
4.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 – 우리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
《하이재킹》은 단순한 긴장감 넘치는 영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이념과 체제, 인간과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극한의 위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는 길을, 누군가는 끝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키려 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겠는가?
공포는 선택을 강요하지만, 용기는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선택들이 모여,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말해준다.
5. 결론 – 공포의 순간에도, 인간은 선택한다
《하이재킹》은 팩트와 드라마가 균형을 이루며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가치를 담아낸 실화극이다. 단 한 공간에서, 단 한 사건을 통해 이념과 인간성, 용기와 두려움의 경계를 섬세하게 조율하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 “두려움은 본능, 저항은 선택.”
⭐⭐⭐⭐⭐ (5/5)
《하이재킹》은 폐쇄된 공간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다움의 기록이다. 잊혀졌던 역사 속 한 장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낸 이 영화는, 오늘의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